불안이 사라졌다.
마음도 어느 정도 가라앉았다.
큰 걱정도 없고, 당장 해결해야 할 문제도 없다.
그런데 이상하게
사람은 이 상태를 오래 유지하지 못한다.
괜히 뉴스를 들춰보고,
괜히 건강 신호를 점검하고,
괜히 관계 속 말 한마디를 되짚는다.
아무 일도 없는데
마치 뭔가 있어야 할 것처럼 불안을 찾는다.
이건 성격 문제도,
유난도 아니다.

1. 뇌는 ‘평온’을 기본값으로 두지 않는다.
우리는 흔히 이렇게 생각한다.
문제가 없으면 → 평온해야 한다.
하지만 뇌의 기본 설계는 다르다.
뇌에게 기본값은 안전이 아니라 생존이다.
그래서 뇌는 아무 일도 없을 때 이렇게 판단한다.
“아직 위험이 안 보일 뿐이다.”
위험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아직 발견되지 않은 상태라고 해석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평온은
안정이 아니라 탐색 신호가 된다.
2. 불안은 감정이 아니라 ‘탐색 모드’다.
불안의 핵심 기능은 괴로움이 아니다.
불안의 역할은 하나다.
“주변을 다시 훑어봐라.”
그래서 불안은 문제가 생긴 뒤에만 나타나지 않는다.
오히려 문제가 없을 때 더 자주 작동한다.
혹시 놓친 게 있지는 않은지,
이 평온이 오래가도 되는지,
대비하지 않아도 정말 괜찮은지.
이 질문들이 반복되면
사람은 결국 불안을 만들어낸다.
불안이 있어서 힘든 게 아니라,
불안이 없으면 방향을 잃기 때문이다.

3. 평온은 ‘목표 상실’로 해석된다.
오랫동안 불안 속에서 살아온 사람일수록
불안은 하나의 기준이었다.
무엇을 해야 하는지,
어디에 에너지를 써야 하는지,
무엇을 조심해야 하는지.
불안이 사라지면
이 기준도 함께 사라진다.
그러면 뇌는 이렇게 느낀다.
“지금 나는 뭘 기준으로 움직여야 하지?”
이 상태가 길어지면
사람은 평온을 유지하기보다
차라리 익숙한 불안으로 돌아가려 한다.
4. 그래서 사람은 스스로 걱정을 만들어낸다.
이 지점에서 사람들은 무의식적으로 행동한다.
이미 끝난 일을 다시 걱정하고,
가능성 낮은 최악을 상상하고,
굳이 필요 없는 문제를 끌어온다.
겉으로 보면
스스로를 괴롭히는 선택처럼 보인다.
하지만 뇌 입장에서는
방향을 되찾기 위한 시도다.
불안은 고통이지만,
동시에 움직일 이유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5. 평온을 유지하는 데도 연습이 필요하다.
많은 사람은
불안을 줄이는 연습은 해봤지만,
평온을 유지하는 연습은 해보지 않았다.
그래서 평온이 오면
그걸 실패나 정체로 오해한다.
하지만 평온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상태가 아니다.
반응하지 않아도 되는 상태,
즉각 대비하지 않아도 되는 상태,
스스로를 증명하지 않아도 되는 상태.
이 상태를 견디는 것도
하나의 능력이다.

결 론 - 평온은 자동으로 유지되지 않는다.
불안이 사라졌다고 해서
자동으로 편안해지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때부터
새로운 선택이 시작된다.
“이제도 불안이 필요할까?”
이 질문에
조급하게 답하지 않아도 된다.
평온은
문제가 없다는 증거가 아니라,
다른 방식으로 살아볼 수 있는 구간이다.
불안을 다시 만들지 않아도 되는지,
지금은 그걸 시험하는 중일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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