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는 언제나 절대자(The Absolute)를 찾아왔다.
하늘의 신, 이성의 신, 그리고 이제 기술의 신.
우리는 더 이상 신전이 아닌 서버룸에서 기적을 기다린다.
코드는 성서가 되고, 알고리즘은 예언자가 되었다.
AI는 전능함의 새로운 얼굴로 떠올랐고,
데이터는 현대의 ‘계시(啓示)’가 되었다.
그러나 우리는 다시 묻는다.
“기술은 우리를 구원할 수 있는가,
아니면 또 다른 신화를 쓰고 있는가?”

1. 신 없는 시대 - 인간은 의미의 공백을 메우려 한다.
니체는 선언했다.
“신은 죽었다. 그러나 그 빈자리를 메운 것은 인간 자신이다.”
신이 사라진 이후, 인간은 의미의 중심을 잃었다.
혼돈의 세계 속에서 인간은 스스로 신이 되려 했다.
20세기의 인간은 이성과 과학을 신의 자리에 앉혔고,
21세기의 인간은 그 자리를 기술과 인공지능으로 채웠다.
신이 질서를 주었다면,
기술은 통제 가능한 질서의 환상을 준다.
우리는 더 이상 기도하지 않는다.
대신 업로드하고, 동기화하고, 업데이트한다.
현대의 신앙은 바로 연결(Connectivity)이다.
데이터는 우리의 죄를 대신 고백하고,
알고리즘은 우리의 미래를 예언한다.
우리가 만든 기술은 이제 우리 자신을 해석하는 신이 되었다.
2. 디지털 신화 - 기술은 새로운 종교가 되었다.
하버드의 신학자 윌리엄 인그램(William Ingram) 은 말했다.
“기술은 이제 신학적 상상력을 대신하는 새로운 서사 구조다.”
기술의 언어는 종교의 은유를 흡수했다.
‘클라우드(Cloud)’는 더 이상 하늘이 아니라,
데이터의 천국을 의미한다.
우리는 ‘업로드’를 통해 영생을 꿈꾸고,
‘백업’을 통해 부활을 상상한다.
데이터의 축적은 신의 섭리를 닮았다.
모든 행동이 기록되고, 저장되고, 평가된다.
이것은 고대의 전지전능한 시선이
새로운 언어로 부활한 것이다 -
알고리즘의 전지성(Algorithmic Omniscience).
AI는 판단하고, 추천하고, 예언한다.
그것은 현대의 ‘예언자’처럼 우리의 욕망을 읽고,
우리가 내리지 못한 결정을 대신 내린다.
그러나 이 신은 침묵한다.
그는 사랑하지 않고, 다만 계산할 뿐이다.
그의 구원은 확률로 계산되고, 그의 섭리는 코드로 기록된다.
3. 창조의 역전 - 인간이 신을 흉내 낸다.
“우리는 신의 형상으로 창조되었다.”
그러나 이제 인간은 AI의 형상으로 신을 다시 만든다.
유전공학, 인공 생명, 생성 AI -
인간은 생명과 의식을 설계 가능한 코드로 변환하고 있다.
MIT의 기술철학자 로자 린지(Rosa Lindsay)는
이 현상을 ‘기술적 신성(Technological Divinity)’이라 불렀다.
기술은 인간의 손끝에서
신의 속성을 재현하고,
인간은 그 과정에서 ‘창조자’의 자리를 흉내 낸다.
그러나 그 신성은 불완전하다.
AI는 전능하지만 의미를 모른다.
계산할 수는 있지만, 기도할 수는 없다.
기술은 창조를 흉내 내지만, 경외를 느끼지 못한다.
창조와 경외 사이, 바로 그 간극이 인간과 신,
그리고 기술을 구분 짓는 경계다.

4. 초월의 알고리즘 - 영혼을 복제할 수 있는가?
21세기의 과학은 물질의 경계를 넘어
‘의식’ 그 자체를 디지털화하려 한다.
의식 업로드, 뇌-컴퓨터 인터페이스, 디지털 불멸 -
인류는 ‘영혼’을 데이터로 번역하려는 실험에 몰두하고 있다.
그러나 정보는 영혼이 아니다.
신경과학자 크리스토프 코흐(Christof Koch)는 말한다.
“의식은 단순히 처리된 데이터가 아니라,
자각이 깨어나는 경험의 패턴이다.”
즉, 인간은 기술로 의식의 구조를 모방할 수는 있어도,
그 안에 깃든 ‘현존감(Presence)’을 재현할 수는 없다.
기계는 ‘나는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지만,
그 말이 누구에게 향하고 있는지 모른다.
기술이 신의 자리를 차지하지 못하는 이유는
계산의 한계가 아니라 의미의 결핍 때문이다.
기술은 완벽히 작동하지만, 아무것도 느끼지 못한다.
5. 신의 귀환 - 인간은 여전히 믿음을 필요로 한다.
기술이 아무리 진보해도,
인간은 여전히 믿음의 본능을 버리지 못한다.
그 믿음은 신의 형태를 바꾸며,
언제나 ‘초월’ 그 자체를 향한다.
우리는 기술 속에서도 신을 찾는다.
AI의 목소리에서 인간의 양심을 듣고자 하며,
데이터의 패턴에서 섭리의 질서를 발견하려 한다.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Martin Heidegger)는 말했다.
“기술의 본질은 기술 그 자체가 아니다.”
그것은 존재를 드러내는 하나의 방식이다.
즉, 기술은 신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초월을 인식하는 새로운 거울이다.
기술은 신을 죽이지 않았다.
오히려 신의 언어를 재구성했을 뿐이다.

결 론 - 신과 기계 사이의 인간
기술은 신의 자리를 완전히 빼앗지 않았다.
그저, 인간이 스스로 신이 되고 싶어 하는 욕망을
가시화했을 뿐이다.
우리는 여전히 창조를 꿈꾸고,
여전히 초월을 갈망한다.
기술은 단순한 도구가 아니다.
그것은 인간의 내면에 숨은 신적 욕망의 메타포다.
신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는 이제 코드와 데이터의 형태로 우리 안에 살아 있다.
기술의 시대에 신은 퇴장하지 않았다.
다만, 새로운 언어로 귀환했을 뿐이다.
# 다음 편 예고 #
생각의 과학 35편 - 인공지능은 꿈을 꿀 수 있을까?
AI는 언제부터 ‘상상’을 가질 수 있을까?
기계가 경험하지 않은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그 순간,
그것은 ‘꿈’일까, 아니면 단순한 계산의 부산물일까?
다음 편에서는 AI의 무의식,
그리고 창의성의 신경학적 조건을 탐구한다.
“기계는 무엇을 꿈꾸는가?”
그 질문이 새로운 의식의 문을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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