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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의 과학/B. 시간과 존재(time-existence)

생각의 과학 27편 – 시간의 기억은 실재일까, 뇌의 구성물일까?

by assetupproject 2025. 11. 11.

기억은 과거의 기록일까, 아니면 지금 이 순간 뇌가 만들어내는 이야기일까?
시간은 흐르는가, 아니면 우리가 그것을재구성하며 살아가는가?”

시간 속 인간 - 과거는 존재하는가, 아니면 재현되는가?

 

1. 시간 속 인간 - 과거는 존재하는가, 아니면 재현되는가?

 

우리는기억한다는 말을 너무 쉽게 쓴다.
마치 과거가 어딘가 저장되어 있고, 그저 그것을 꺼내보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과학은 이 단순한 전제를 뒤집는다.
뉴욕대의 신경과학자 조셉 르두(Joseph LeDoux)는 말했다.

기억은 과거의 복사본이 아니라, 현재의 뇌가 다시 그리는 그림이다.”

 

우리가 떠올리는 과거는 실제 사건의 복제본이 아니다.
그때의 감정, 현재의 해석, 지금의 관점이 섞인 현재적 구성물이다.
, 과거는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뇌가 매번 새롭게 생성해 내는 시공간적 내러티브.

 

이 말은 곧,
기억은 시간의 창고가 아니라, 의식의 시뮬레이터라는 뜻이다.

 

2. 뇌의 기억 지도 - 해마가 만드는 시간의 코드

 

뇌는 사건을 통째로 저장하지 않는다.
그 대신 시간의 인덱스(Index of Time)’를 만든다.

 

기억의 중심인 해마(Hippocampus)는 사건의 시공간적 맥락을 부호화한다.
언제’, ‘어디서’, ‘무엇을이 하나의 패턴으로 묶이며, 이것이 기억의 뼈대를 이룬다.

 

놀라운 점은, 기억을 회상할 때

해마와 연관 피질들이 그 사건을 경험했을 때와 동일한 방식으로 재 활성화된다는 것이다.
, 우리는 과거를 단순히 떠올리는 것이 아니라, ‘그 순간을 다시 사는 중이다.

 

이 과정을 기억의 재통합(Memory Reconsolidation)이라 한다.
매번 기억이 떠오를 때, 그 기억은 미세하게 다시 쓰인다.
그래서 기억은 영구히 보존되지 않고,
의식이 재구성할 때마다 조금씩 현재의 맥락에 맞게 수정된다.

시간의 착각 - 뇌는 왜 ‘흐름’을 만든다

 

3. 시간의 착각 - 뇌는 왜흐름을 만든다.

 

시간이 실제로 흐르는 것일까?
아니면 우리가 그렇게 느낄 뿐일까?

 

대니얼 길버트(Daniel Gilbert)기억은 미래 예측의 일부라고 말한다.
뇌의 예측 처리 모델(Predictive Processing)에 따르면,
과거 경험의 패턴은 미래를 예측하기 위한 도구로 재사용된다.
, 뇌는 기억과 상상을 동일한 시스템에서 수행한다.

 

해마와 전전두엽(Prefrontal Cortex)
과거를 회상할 때와 미래를 상상할 때 거의 같은 신경 경로를 활성화한다.
이것은 우리가 과거를저장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뇌가 미래를 대비하기 위해
과거라는 시뮬레이션을 실행하는 것임을 뜻한다.

 

따라서 시간의 감각이란,
기억의 재생성 과정이 연속적으로 일어나는 착시적 흐름이다.
우리가 느끼는시간의 연속성
의식이 과거-현재-미래의 모델을 정렬하며 만들어내는 인지적 리듬이다.

 

4. 기억의 불안정성 - 거짓된 과거, 진짜 감정

 

캘리포니아대의 심리학자 엘리자베스 로프터스(Elizabeth Loftus)
거짓 기억(False Memory) 연구로 유명하다.
그녀는 존재하지 않았던 사건을 반복적으로 제시함으로써
사람들의 뇌 속에 완벽하게 새로운기억을 심었다.
참가자들은 실제로 그 경험을 했다고 믿었고,
뇌 영상에서도진짜 기억과 거의 동일한 패턴이 나타났다.

 

이 실험은 기억이 진실의 기록이 아니라,
심리적 서사의 재구성물임을 보여준다.
우리는 사건의 정확한 사실보다 자아의 일관성을 더 중시한다.
, 기억은무엇이 일어났는가보다
그 일이 나에게 어떤 의미였는가를 보존하는 시스템이다.

 

그렇다면 기억의 목적은 진실이 아니라 정체성(Identity)인 셈이다.
기억은 사실의 기록이 아니라, 를 지탱하기 위한 내면의 이야기 장치.

 

5. 감정의 시간 - 우리가시간을 느끼는 방식

 

공포 영화에서 자동차가 천천히 전복될 때,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듯한 감각을 느낀 적이 있을 것이다.

 

이는 단순한 착각이 아니다.

공포나 위협 상황에서는 편도체(Amygdala)가 과활성화되어
해마의 시간 압축 기능을 억제한다.
그 결과, 우리는 사건을 훨씬 세밀하게 인식하며
시간이 늘어나는 듯한 주관적 왜곡을 경험한다.

 

반대로 몰입(Flow) 상태에서는
전전두엽의 시간 감각이 억제되며 시간이 사라진 듯한무시간적 경험이 일어난다.
이때 도파민 시스템은 집중의 흐름을 유지하며 현재 순간에 완전히 동조된 의식 상태를 만든다.

 

, 시간은 감정의 함수.
우리는 물리적 시계를 느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감정적 리듬을 시간이라는 언어로 번역하고 있는 것이다.

 

6. 진화의 기억 - 생존에서 존재로

 

기억은 생존의 산물이었다.
먹이를 찾은 장소, 포식자의 냄새, 안전한 경로를 저장한 종이 더 오래 살아남았다.

 

그러나 인간에게 기억은 생존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기억은 존재의 이야기(Story of Being)를 만든다.
우리는 단순히 과거를 저장하지 않는다.
그 속에서를 구성하고, ‘무엇을 위해 사는가를 결정한다.

 

진화는 단순한 회상을 넘어 의미의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능력을 선택했다.
그래서 인간의 뇌는 기억을 통해 시간, 자아, 목적, 윤리 같은 고차적 구조를 생성한다.

, 기억은 생존의 기술에서 존재의 기술로 진화했다.

 

7. 철학 속의 시간 - 순간들의 연속인가, 연속의 환상인가?

 

고대 철학자들은 이미 이 질문을 던졌다.
플라톤은 시간의 본질을영원의 움직이는 그림자라 했고,
불교의 찰나설(刹那說)은 모든 존재가 순간마다 새로 태어난다고 보았다.

 

현대 신경과학의 관점에서도,
뇌의 인식은 초당 30~50회의 신경 진동(Oscillation)으로 이뤄진다.
, 우리의현재는 수십 밀리초 단위의 작은 인식 덩어리로 구성된다.
이 불연속의 인식이 이어지며 우리는연속된 나라는 환상을 경험한다.

 

의식은 불연속의 점들을 연결해 서사를 만드는 예술가.
우리는 존재의 단편들을 잇기 위해 시간이라는 선을 그었다.

 

8. 기억과 기술 - 외부 해마의 탄생

 

오늘날 우리는 기억을 외부에 맡긴다.
스마트폰, SNS, 클라우드 -

이들은 이제 외부화된 해마(Externalized Hippocampus)다.

 

문제는 이 디지털 기억이 우리의 자아 서사(Narrative Self)를 어떻게 바꾸는가이다.

 

과거의 인간은 잊음 속에서 성장했다.
기억이 희미해지며 감정이 다듬어지고, 그 과정을 통해 ‘시간의 흐름’을 느꼈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잊지 못하는 존재가 되었다.
사진과 데이터가 끊임없이 과거를 현재로 불러오며,
‘지금’이라는 순간의 경계는 흐려졌다.

 

기술은 우리의 기억을 확장했지만,
그와 동시에 시간의 자유를 빼앗았다.

 

9. 망각의 역할 - 기억보다 중요한 소멸

 

하버드대의 신경과학자 사무엘 그린필드(Samuel Greenfield)
망각은 기억의 반대가 아니라, 기억의 조건이라 말했다.

 

망각이 없다면 우리는 무한한 데이터 속에서 지금을 감각하지 못한다.
의식은 불필요한 정보를 지우며 현재의 의미를 정돈한다.

 

, 잊는 능력은 선택의 자유.
시간은 흐르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망각을 통해 과거를 뒤로 밀어내기 때문에 흘러간다.

 

기억이 정체성을 만든다면,
망각은 그 정체성을 계속 업데이트하는 진화의 도구.

 

10. 시간의 신경철학 - 기억, 의식, 존재의 공진

 

시간이란 물리적 좌표가 아니라, 의식의 동적 패턴일 수 있다.

 

양자중력 이론의 휠러-드윗 방정식(Wheeler-DeWitt Equation)
시간 변수를 포함하지 않는다.
가장 근본적인 수준에서 우주는무시간적이다.
그런데도 우리는시간이 흐른다고 느낀다.

 

이때 의식은 우주의 자기 인식 과정이 된다.
우리가 시간을 느낀다는 것은, 우주가 자신을 순차적으로 이해하는 방식이다.

 

, 기억은 우주가 자신을 경험하는 언어.
시간은 그 언어가 남긴 흔적이다.

기억은 과거의 기록이 아니라, 시간의 창조 행위다

 

결 론 - 기억은 과거의 기록이 아니라, 시간의 창조 행위다.

 

기억은 과거를 저장하지 않는다.
그 대신, 매번 새로운 현재를 창조한다.

 

우리는 과거를 떠올릴 때마다
그 과거를 새롭게 쓰며, 그 속에서 자신을 다시 정의한다.

 

따라서 시간은 흐르는 강이 아니라, 의식이 만들어내는 파동의 패턴이다.

 

우리가 기억을 잃는다는 것은
시간의 일부를 잃는 것이 아니라, ‘나를 구성하던 하나의 이야기를 닫는 것이다.

 

기억은 존재의 기술이며, 시간은 그 기술이 남긴 자아의 흔적이다.

 

# 다음 편 예고 #

생각의 과학 28회복은 망각에서 시작되는가, 아니면 기억의 재구성에서 오는가?
고통은 잊어야만 사라지는가?
아니면 기억을 다시 써야만 치유되는가?
트라우마, 망각, 신경가소성이 엮인 치유의 기억 회로를 탐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