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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의 과학/B. 시간과 존재(time-existence)

생각의 과학 70편 - 왜 우리는 과거의 나를 과하게 미화하거나 증오할까?

by assetupproject 2025. 12. 11.

 

우리는 종종 과거의 나를 떠올리며 이렇게 말한다.

 

“그땐 참 열정 있었는데…”
“그때 왜 그렇게 멍청했을까.”
“생각하면 아직도 이불킥이야.”

 

어떤 날은 과거의 내가 지금보다 더 단단해 보이고,
어떤 날은 너무 미숙해서 지워버리고 싶어진다.

 

흥미로운 점은, 이 서로 반대되는 감정이
모두 ‘현재의 나’에서 시작된다는 사실이다.
기억은 과거를 그대로 보관하는 창고가 아니다.

 

살아가는 동안 계속 다시 해석되고 덧칠되는,
‘편집본에 가까운 기록’이다.

 

기억 왜곡과 과거의 나를 바라보는 심리를 상징한 이미지

 

1. 우리는 왜 ‘과거의 나’를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할까?

뇌는 기억을 그대로 저장하지 않는다.
우리가 떠올리는 것은 그때의 감정 + 지금의 기분이 섞인 해석본이다.

 

그래서 같은 일을 떠올려도,

  • 지금 지쳐 있으면 → “그땐 참 좋았지…”
  • 지금 불만족스럽다면 → “왜 그렇게 멍청했을까…”

과거는 그대로인데,
과거를 바라보는 현재의 내가 달라지기 때문

기억도 매번 색이 바뀐다.

 

2. 과거의 나를 과하게 미화하는 이유

힘들고 지칠수록, 우리는 과거를 더 ‘좋았던 시절’로 편집하기 쉽다.

 

1) 기억에는 ‘하이라이트 장면’만 선명하게 남기 때문이다.

 

시험에 합격한 날,
첫 월급을 받았던 날,
누군가에게 인정받았던 순간.


강한 감정과 연결된 장면은 오래 지나도 또렷하게 남는다.

 

반대로 그 시절의 지루함·불안·실패는 흐릿해지며,
과거는 좋았던 순간만 모은 ‘하이라이트 편집본’으로 남는다.

 

2) 지금의 공허함이 과거를 더 빛나 보이게 만든다.

 

 현재가 불안할수록 뇌는

“그래도 그때가 나았어.”라는 서사를 만들어 안정감을 찾는다.
실제로는 그때도 힘들었는데,

과거의 나는 지금보다 더 단단하고 가능성 있어 보인다.

 

3. 과거의 나를 지나치게 증오하는 이유

반대로 어떤 사람은 과거를 떠올리기만 해도 얼굴이 화끈거린다.

 

1) 지금의 기준으로 과거를 심판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지금의 가치관과 경험을 들고 과거의 나를 평가한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지금만큼의 정보도, 언어도, 선택지도 없던 사람이었다.

 

이 사실을 잊으면, 과거의 나를 지나치게 엄격하게 재판하게 된다.

 

2) 부끄러움을 빨리 끊고 싶을수록 증오가 앞서기 때문이다.

 

이불킥이 떠오르면 뇌는 두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한다.

  • 그때의 나를 이해하려고 천천히 들여다보기
  • 그때의 나를 ‘최악’으로 낙인찍고 빠르게 밀어내기

후자가 더 빠르고 덜 복잡하다.

 

그래서 우리는 “그땐 내가 진짜 한심했어.”라고 스스로를 공격하며
부끄러움과 마주하는 일을 회피한다.

 

과거의 나와 건강하게 관계 맺는 법

 

4. 과거의 나와 건강하게 관계 맺는 법

과거를 미화하거나 증오하는 패턴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생각보다 소박하다.

 

1) “그때의 나에게는 지금의 정보가 없었다.”를 인정하기

 

그 선택이 최선이었는지 따지기 전에,
“그때의 나는, 그때 가진 조건 안에서 최선을 선택했다.”라고 말해 본다.
이 한 문장만으로도 과거의 나를 향한 분노가 크게 내려간다.

 

2) 후회 대신 ‘배운 것’에 밑줄 긋기

 

“왜 그랬을까?”에 머물지 말고 이렇게 묻는다.

  • 그 경험 덕분에 지금의 나는 무엇을 알게 되었지?
  • 그 일을 겪고 난 뒤, 내 선택 기준은 어떻게 달라졌지?

실수는 사라지지 않지만,
그 실수에서 나온 기준·통찰·경계선은 지금의 나를 지켜주는 자원이 된다.

 

3) 과거의 나를 ‘타인 대하듯’ 바라보기

 

“저 사람이 내 친구라면, 뭐라고 말해 주고 싶을까?”
우리는 타인에게는 쉽게 건네는 다정함을,
정작 과거의 나에게는 거의 허락하지 않는다.

 

이 질문 하나만으로도

과거의 나를 향한 감정의 톤이 부드럽게 바뀌기 시작한다.

 

4)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를 한 문장으로 연결하기

 

이렇게 문장을 완성해 본다.

  • “그때의 내가 있었기에, 지금의 나는 …를 할 수 있다.”
  • “그 시절의 선택 덕분에, 지금의 나는 …를 알게 되었다.”

이 문장은 과거와 현재를

끊어진 이야기가 아니라, 이어지는 서사로 만들어 준다.

 

과거의 나는 미화하거나 지워야 할 대상이 아니다.

 

결 론 - 과거의 나는 미화하거나 지워야 할 대상이 아니다.

우리가 과거의 나를 미화하거나 증오하는 이유는
그 시절의 내가 특별히 더 잘했거나 더 못해서가 아니다.

 

단지 현재의 감정과 기준이 과거의 장면 위에 덧칠되기 때문이다.

 

과거의 나를 향한 시선을 조금만 조정하면,
그 시간은 후회나 이불킥으로만 남지 않는다.

 

미완성이었고 서툴렀지만,
지금의 나를 여기까지 데려온 ‘하나의 버전’으로 보이기 시작한다.

 

과거의 나를 적으로 돌리는 대신,
“그때의 나 덕분에 지금의 내가 있다.”라고 말할 수 있을 때,
우리는 비로소 시간 전체에 걸친 ‘나’의 이야기를 온전히 품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