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생각한다’는 것은 어디서 오는가?
우리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르네 데카르트의 명제를 너무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입니다.
하지만 정말로 ‘생각하는 나’는 뇌 안에만 존재할까요?
현대 신경과학은 의식을 뉴런의 전기 신호와 화학 작용의 결과로 봅니다.
감각 입력이 들어오면 시냅스가 반응하고, 전기적 패턴이 생성되어
‘의식적인 경험’이 생긴다는 것이죠.
그러나 여기에 근본적인 의문이 남습니다.
수많은 전기 신호가 복잡하게 얽힌다고 해서,
어떻게 ‘나는 존재한다’는 주관적 자각(Qualia)이 생기는 걸까요?
단순한 정보처리가 ‘느낌’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요?
이 질문은 과학이 아직 완전히 풀지 못한
‘의식의 경이로운 수수께끼(The Hard Problem of Consciousness)’입니다.
인간의 뇌를 완벽히 복제한 인공지능이 만들어진다 해도,
그 AI가 정말 ‘느낀다’고 할 수 있을까?
이 물음은 단순히 과학의 영역을 넘어, 존재의 본질로 향합니다.

2. 과학이 본 의식 - 뇌의 복잡한 패턴인가?
뇌는 약 860억 개의 뉴런과 100조 개의 시냅스 연결로 이루어진 거대한 네트워크입니다.
과학자들은 이 복잡성이 의식의 핵심이라고 봅니다.
신경학자 줄리오 토노니(Giulio Tononi)는
‘통합 정보 이론 (IIT: Integrated Information Theory)’을 제시했습니다.
그는 “의식은 정보가 얼마나 통합되어 있는가”에 따라 달라진다고 설명합니다.
즉, 수많은 정보가 연결되어 하나의 통일된 경험을 만들 때, 의식이 생겨난다는 것입니다.
한편, 글로벌 워크스페이스 이론(GWT)은
의식을 ‘뇌 전체가 공유하는 정보 무대’로 봅니다.
우리가 어떤 정보를 주의 깊게 인식하는 순간,
그 정보가 뇌의 여러 영역으로 퍼져 나가며 ‘의식적 상태’가 형성된다는 것이죠.
이 두 이론 모두 공통적으로 말합니다.
의식은 물질의 작용이며, 뇌는 하나의 물리적 정보 장치라는 것.
그러나 여전히 설명되지 않는 문제가 있습니다.
‘정보’가 어떻게 ‘경험’으로 변할 수 있을까요?
이 부분이 바로 과학이 직면한 한계입니다.
아무리 정교한 신경 모형을 만들어도,
“왜 나는 빨강을 ‘빨갛게’ 느끼는가?” 라는 질문에는 대답할 수 없습니다.
그 미세한 감각의 차이 속에 인간 정신의 신비가 숨어 있습니다.
3. 철학이 본 의식 - 뇌를 넘어선 존재의 차원
고대 철학에서부터 의식은 단순한 물질 현상이 아니라
존재의 본질로 여겨져 왔습니다.
플라톤은 ‘정신(Psyche)’을 물질 이전의 원초적 실제로 보았고,
스피노자는 “정신과 물질은 동일한 실체의 두 속성”이라고 했습니다.
즉, 의식은 물질의 부산물이 아니라,
우주 그 자체가 스스로를 표현하는 또 다른 방식이라는 것입니다.
20세기 물리학자이자 철학자인 데이비드 보움(David Bohm)도
“의식은 우주의 근본적 질서와 연결되어 있다”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는 물질을 ‘명시적 질서’로, 의식을 ‘암묵적 질서’로 구분하며,
두 세계가 서로를 비추는 거울처럼 작용한다고 말했습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의식은 뇌에서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우주가 자신을 인식하기 위해 각 개체 안에서 ‘현현(顯現)’ 하는 것입니다.
즉, 인간의 의식은 개인적인 현상이 아니라
우주적 자각의 한 조각일 수 있습니다.
우리의 생각과 감정, 직관은
거대한 우주의 ‘사유 구조’가 인간이라는 매개를 통해 드러나는 현상일지도 모릅니다.
4. 양자물리학이 던지는 단서 - 의식은 현실의 조건일까?
양자역학에서는 관찰이 입자의 상태를 결정한다는
‘관찰자 효과(Observer Effect)’가 발견되었습니다.
측정이 이루어지기 전, 입자는 파동으로 존재하며 모든 가능성의 중첩 상태에 있습니다.
하지만 누군가 관찰하는 순간,
그 가능성 중 하나가 확정되어 현실로 나타납니다.
이 현상은 마치 의식이 현실을 선택한다는 듯한 인상을 줍니다.
노벨상 수상자 유진 위그너는
“관찰자의 의식이 없었다면, 우주는 결코 존재할 수 없다”라고 말했습니다.
물론 이 주장은 논쟁적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현대 물리학조차 의식과 물질이 분리될 수 없다는 사실을 점점 인정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즉, 의식은 단순한 결과가 아니라
현실을 구성하는 근본적 요소일 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우주는 처음부터 ‘의식적 존재’를 낳기 위해 진화했는지도 모릅니다.
별이 탄생하고, 행성이 생기고, 생명이 등장하며,
그 모든 과정이 결국 자신을 바라볼 수 있는 눈과 마음을 만들기 위한 여정이라면,
의식은 우주의 목적이자 완성일 수 있습니다.
5. 의식의 본질 - 우주는 ‘생각하는 존재’일까?
만약 의식이 뇌의 부산물이라면,
의식은 뇌가 사라질 때 함께 사라져야 합니다.
하지만 많은 신경과학자들은 죽음 직전의 뇌파 활동(NDE 연구)을 통해
‘의식의 지속’ 가능성을 제시합니다.
심장 정지가 일어난 후에도 뇌의 특정 파동이 지속되는 현상이 관찰된 것이죠.
또한 우주의 모든 물질이 근본적으로 정보와 에너지의 패턴이라면,
의식 역시 그 정보의 또 다른 형태일 수 있습니다.
일부 물리학자들은 이를 ‘범심론(Panpsychism)’
즉 “모든 물질은 일정 수준의 의식을 가진다”는 관점으로 설명합니다.
이 사상에 따르면, 인간의 의식은 우주의 기본적 자각이
고도로 복잡한 신경망을 통해 스스로를 인식하는 형태로 발전한 결과입니다.
다시 말해, 뇌는 의식을 만들어내는 기계가 아니라,
의식이 스스로를 경험하기 위한 도구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인간이 ‘나는 생각한다’고 느끼는 순간,
사실은 우주가 자기 자신을 ‘나는 존재한다’고 선언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결 론 - 의식은 뇌의 그림자이자, 우주의 빛이다.
의식은 단지 뉴런의 전기적 작용으로 환원될 수 없습니다.
그것은 물질의 작용 속에 숨어 있는 우주의 자기 인식적 성질입니다.
뇌는 의식을 담는 그릇이지만,
의식은 그릇 안의 물이 아니라 그 물을 비추는 빛에 더 가깝습니다.
우리가 사유하고 느끼는 모든 순간,
우주는 인간의 눈과 마음을 통해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따라서 의식은 뇌의 산물인 동시에,
우주의 본질이 드러나는 창입니다.
인간은 우주가 스스로를 자각하기 위해 선택한 통로이자,
의식의 거대한 순환 속에 놓인 한 존재입니다.
# 다음 편 예고 #
생각의 과학 12편 – 기술 발전은 인간을 더 자유롭게 만드는가, 더 종속시키는가?
AI와 자동화, 초연결 사회 속에서 인간은 과연 더 자유로워지고 있을까?
기술이 인간의 가능성을 확장하는 동시에,
우리의 사고와 감정을 통제하는 ‘새로운 신(神)’이 되어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다음 편에서는 인간과 기술의 관계, 그리고 자유의 본질을 탐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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