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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의 과학/B. 시간과 존재(time-existence)

생각의 과학 5편 - 기억은 과거의 저장일까, 현재의 재구성일까?

by assetupproject 2025. 11. 6.

기억은 과거의 저장일까, 현재의 재구성일까?

 

“기억은 과거의 기록이 아니라, 현재의 뇌가 다시 써 내려가는 이야기다.”

 

기억은 우리의 삶을 엮는 실이자, 정체성을 짜는 직물입니다.
우리는 기억 속에서 웃고 울며, 자신이 누구인지를 확인합니다.
어제의 경험이 오늘의 나를 만들고, 과거의 선택이 지금의 삶을 이끌어왔다고 믿지요.


그러나 그 기억은 과연그때의 일을 그대로 담고 있을까요?

최근 뇌과학과 철학은 놀라운 사실을 보여줍니다.
기억은 과거의 복사본이 아니라, 매번 새롭게 조립되는 이야기라는 것입니다.


, 인간은 과거를 저장하는 존재가 아니라, 과거를 해석하고 다시 구성하며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이 글에서는 기억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왜곡되며 인간의 존재와 어떤 관계를 맺는지를 함께 살펴봅니다.

우리가 믿는 ‘기억’은 진실일까?

 

1. 우리가 믿는기억은 진실일까?

 

누구나 한 번쯤 과거의 장면을 떠올리며 미소 짓거나 후회한 적이 있습니다.
우리는 기억을그때의 일”이라고 믿지만, 과학은 그 단순한 믿음에 의문을 던집니다.

 

하버드대의 엘리자베스 로프터스(Elizabeth Loftus)

기억이 얼마나 쉽게 왜곡되는지를 보여주는 유명한 실험을 진행했습니다.
사람들에게 같은 교통사고 영상을 보여주고,

질문에서부딪쳤다(hit)” 대신“충돌했다(smashed)”라는 단어만 바꿨더니,

사람들은 실제보다 더 심각한 사고를기억했습니다.

이처럼 언어 하나, 감정 하나만 달라져도 우리의 뇌는 새로운 기억을 만들어냅니다.


결국 우리가 믿는 과거는 완벽한 진실이 아니라, ‘지금의 나’가 만들어낸 해석의 산물입니다.
기억은 사실의 복사본이 아니라, 감정과 인식이 덧입혀진 이야기이자,

현재의 의식이 과거를 다시 쓰는 과정입니다.

 

2. 과학이 말하는 기억 - 저장이 아닌재생성의 과정

 

뇌과학은 기억을 세 단계로 설명합니다.


형성(Encoding) – 경험을 신경 회로로 바꾸는 단계,
저장(Storage) – 해마(Hippocampus)가 정보를 단기에서 장기로 넘기는 과정,
회상(Recall) – 과거의 정보를 다시 불러오는 과정입니다.

 

가장 흥미로운 단계는‘회상’입니다. 기억은 단순히 파일을 여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정보를 현재의 맥락 속에서 

재구성하는 신경적 재생성(Neural Reconstruction) 과정입니다.


하버드의 신경과학자 다니엘 샥터(Daniel Schacter)는

이를기억의 유연성(Memory’s Flexibility)”이라 부르며,
기억은 정적인 저장소가 아니라 끊임없이 수정되는 시뮬레이션”이라고 설명했습니다.

MIT의 신경과학자 스스무 도네가와(Susumu Tonegawa)의 실험에서는,

쥐의 기억 세포를 인공적으로 자극하여 존재하지 않는 경험을기억하게 만들었습니다.


이 연구는 기억이 단순한 저장된 사실의 기록이 아니라,

신경 회로의 재활성화로 구성된 현재의 창조물임을 보여줍니다.

이처럼 기억은 재생이 아니라 재창조에 가깝습니다.
과거의 경험을 그대로 복제하는 대신, 현재의 상황에 맞게 정보를 재조합함으로써

우리는 더 나은 판단과 생존 전략을 세울 수 있습니다.
기억은 단순한 데이터베이스가 아니라, 현재의 생존을 돕는 창조적 사고의 엔진인 셈입니다.

 

3. 철학이 본 기억 - 존재와 정체성의 근원

 

철학에서 기억은 단순한 뇌의 기능이 아니라존재의 연속성을 가능하게 하는 힘입니다.
영국의 철학자 존 로크(John Locke)기억이 곧 자아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우리가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를 동일한 존재로 인식할 수 있는 이유가 바로 기억이라고 봤습니다.
기억이 사라진다면, 시간 속의또한 끊어지는 것입니다.

 

프랑스 철학자 앙리 베르그송(Henri Bergson)은 기억을의식의 창조적 작용’으로 해석했습니다.
그는 과거의 사건이 그대로 보존되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의식 속에서 끊임없이 새롭게 태어난다고 주장했습니다.

오늘날 인지철학자들은 이 사상을서사적 자아(Narrative Self)’로 발전시켰습니다.


, 인간은 기억을 통해 자기 삶을 이야기로 엮고, 그 이야기 속에서 자신을 이해합니다.
기억은 정보를 저장하는 기능이 아니라, ‘나’라는 존재를 끊임없이 다시 써 내려가는 창조 행위입니다.

기억의 왜곡 – 뇌의 생존 전략

 

4. 기억의 왜곡 - 뇌의 생존 전략

 

기억의 왜곡은 결함이 아니라 진화적 생존 전략입니다.
뇌는 고통스러운 기억을 완화하고, 생존에 불필요한 정보는 잊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외상적 경험을 단순히 억누르지 않고,

시간이 지나며 감정적으로 완화된 형태로 다시 써 내려갑니다.
이 덕분에 우리는 과거에 머무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또한 사회적 영향, 언어, 미디어 자극은 우리의 기억을 미묘하게 바꿉니다.
타인의 이야기를 듣고 자신이 그 자리에 있었던 것처럼 느끼는

거짓 기억(False Memory)’ 현상도 이런 방식으로 만들어집니다.

결국 기억은 객관적 진실의 복사본이 아니라,

현재의 심리적 안정과 적응을 위한 뇌의 재구성물입니다.

 

5. 기억의 의미 - 과거를 재창조하는 현재의 힘

 

기억이 완벽하지 않다고 해서 그것이 무의미한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그 불완전함 덕분에 인간은 스스로의 삶을 새롭게 해석하고 성장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고통스러운 과거를 더 견딜 수 있는 이야기로 바꾸고,

행복했던 기억 속에서 내일의 용기를 얻습니다.

 

기억은 과거의 저장인가?” 보다 더 중요한 질문은

우리는 그 기억을 통해 어떤 현재를 만들어가고 있는가?”입니다.

인간은 완벽한 기록자가 아니라, 끊임없이 자신을 다시 써 내려가는 이야기의 존재입니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상처를 치유하고, 또 다른 자신을 창조합니다.

기억은 인간이 쓰는 예술이다.

 

결 론 - 기억은 인간이 쓰는 예술이다.

 

기억은 과거의 복사본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가 스스로의 이야기를 다시 써 내려가는 창조의 예술입니다.
우리가 과거를 떠올릴 때마다, 그 기억은 다시 태어나며

그 안에서 우리는라는 존재를 새롭게 만들어갑니다.

우리는 기억을 통해 과거의 자신과 대화하고, 미래의 자신에게 편지를 씁니다.
완벽하지 않기에 더 인간적인 기억은, 우리가 계속 변화할 수 있다는 가능성의 증거이기도 합니다.
그 불완전함 속에서 인간은 성장하고, 자신을 새롭게 다시 써 내려갑니다.
결국 기억은 시간의 흔적이 아니라, 인간 의식의 살아 있는 숨결입니다.

 

# 다음 편 예고 #

생각의 과학 6우주는 스스로를 인식하는 존재일까?

우주는 단순한 물질의 집합일까요, 아니면 스스로를 인식하는 거대한 의식일까요?
다음 편에서는 인간과 우주의 자각, 그리고 존재의 자기 인식에 대해 탐구합니다.